器, 그 생성의 힘과 정신성

 

글 / 김옥렬

 

박성백은 그 자신의 말에서처럼 도자기를 통해 ‘자연, 물질, 생명, 사람 그리고 불완전함과 고통 모두를 사랑하며 지극히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오브제와 접시들 안에 넉넉한 인간의 영혼과 삶을 담아’내고자 시도한다. 그래서 그의 도자기에서는 오랜 시간 퇴적되어 쌓인 삶의 흔적과 시간성이 도자기의 갈라진 틈이나 흙에 녹아든 철이 만들어 내는 독특한 형상을 통해 나타난다. 다양한 재료의 방법적 모색에서 나타나는 그의 이러한 작업은 흙을 통한 그 자신의 삶의 경험뿐만이 아니라 삶의 기록이자 현장이기도 하다. 흙과 흙이 서로 조응하는 관계를 보여 주듯 나타나는 갈라진 틈은 도자기의 예술성을 보여주는 조형적 울림이자 흙이 흙이고자 하는 재료의 특성까지도 고려한 깊은 성찰과 작업적 성과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흙이 지닌 소재의 한계는 그의 예술정신을 담아내는 장애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의 특징은 흙을 통해서만 생성되는 흙의 통일적인 형식 속에서 기능적이고 심미적인 요소의 통일을 이끌어 내는 예술적 법칙이 된다.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주는 도자기에 담긴 그의 예술성이라면 우선은 도자기의 형태나 표면에서 생겨나는 갈라진 틈에 의도된 외적 조형성과 인위적인 규정 속에 갇힌 조형성을 벗어나 철저히 흙이라는 소재가 지닌 원초적 자연성을 강조함으로써 압축된 시간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원초적 자연성이란 다만 자연스럽게 나타내 보이려는 의도에서가 아닌, 오랜 시간 바람과 공기 그리고 빛과 함께 변화되어 시․공간 속에서 만들어진 깊이를 그의 도자기 속에 투영시키고 있음이다. 그래서 그는 작업을 위한 ‘기원으로의 여행’을 떠나고 있다.

 

그는 흙이 지닌 흙의 역사를 자신의 예술적 역사로 치환하기 위한 방법으로 도자기 속에 오랜 시간 퇴적되어 쌓인 시간체험의 깊이를 압축함으로써 애초에 흙이 지닌 시간을 넘어 그 자신의 시간으로 전환하는, 그리하여 새롭게 자신의 도자기 역사를 만들어 가는 작업을 한다. 이렇듯 흙은 손길과 불길의 경험적 실현과정을 거쳐 하나의 새롭게 생성하는 힘이 담긴 압축된 도자기로 거듭난다. 바로 이 과정, 흙이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하는 과정에 늘 함께 하며 자신의 예술혼을 불어넣는 이가 도예가 일 것이다. 그의 정신이 곧 그의 도자기인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 이렇게 태어난 도자기의 생명은 애정을 가진 눈이 제대로 이해하고 만지고 사용될 때만이 가치를 얻게된다.

 

 

2000년 경인미술관 기획 초대전에서 보여준 <物로부터 태어난 物 - 접시>에서 그가 보여준 ‘기원으로의 여행’은 바로 그와 같은 ‘시간의 응축’을 보여준 전시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 퇴적된 시간성을 응축해 놓으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의 도자기작업들이 현대라는 시대적 감성과 맞닿아 있음을 본다. 어쩌면 그가 담아 놓으려는 시․공간의 응축이 그러한 한정된 어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여행이기보다는 시․공간을 초월한 불변의 정신성을 담아보고자 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대부분의 전시에서 도자기의 기능적인 면보다는 예술성에 집착하고 있음이 강하게 드러난다. 이를테면 ‘갈라진 틈’을 의도적으로 조형하려는 의지라거나 혹은 철망이나 나무 등의 오브제의 사용으로 제한적 재료의 한계를 벗어 보고자 할 뿐만이 아니라, 흙과의 이질감을 강조함으로써 시간의 깊이를 불길에 맡겨 놓기도 한다(재료의 소성 온도의 차이에 따른 효과를 강조). 이처럼 그는 다양한 실험적 시도와 노력으로 전통적인 도자기의 형상이나 색에 대한 탐색보다는 창의적인 시도를 통해 자신의 독자적 조형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실험정신이 투영된 지점에서 우리는 그의 도자기가 지닌 현대적 감성과 마주하는 것이다.

 

어느 면에서 그의 작업에서 일견되는 도자기의 형식을 취한 오브제로서의 구체성에도 불구하고 추상적 관념에 빠질 위험도 없지 않다. 이는 도자기의 전면에 거의 유사한 조직으로 ‘갈라진 틈’들이 다만 무의미한 조형적 울림이 되고 있지 않는가! 라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금새 기우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의 지점에 다시 서게 된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그는 자연의 원초적 체험의 과정을 거쳐 물적 체험의 정신성을 보여주고자 ‘갈라진 틈’을 통해 시간의 깊이와 정신의 깊이를 사유하게 하는 생성의 힘을 담아 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그의 작업 태도는 종교적 믿음에서 생겨나는 신앙의 깊이를 통해 도자기가 도자기일 수 있기 위한 실용성만을 추구하는 한계를 극복하여 물적 체험을 통한 정신성을 담아내려는 그의 사유방식에서 연유한다. 이는 그의 작업들이 다만 새로움에 대한 도전만이 아닌, 진지한 조형적 감수성이 강하게 배여 있게 하는 이유인 동시에 그의 노력과 열정이 도자기 속에 함께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박성백의 이번 작업에서는 전시기획의 특성과 도자기에 대한 일반적 인식을 고려해 물적 체험과 정신적 체험이 지닌 이중적 의미를 동시에 부각시키기 위해 재료나 조형적인 탐닉보다는 기능성과 예술성의 조화에 보다 관심의 무게를 담아 보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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